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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엘가의 지휘 위풍당당 행진곡

대장종이 2011. 11. 2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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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엘가의 지휘  위풍당당 행진곡

원 제목은 "Pomp and Circumstance Military Marches, Op. 39"



March No.1 in D major - Allegro con molto fuoco


March No.2 in A minor - Allegro Molto


March No.3 in C minor - Con fuoco

 


March No.4 in G major - Allegro marziale


March No.5 in C major - Vivace

엘가(Elgar, Edward, 1857~1934, 英)

 

엘가는 1857년 오르가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 법률가에 뜻을 두었으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발견한 후 열심히 음악공부를 하였다. 그 후 우스터 글리 클럽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했다.

 

 

 

 

1889년 32세 때 캐롤린 앨리스와 결혼한 엘가는 아내의 적극적인 권유에 의해 뒤늦게 작곡을 시작했다. 1891년 마르번으로 이사하여 13년 동안 지내면서 창작에 힘써 점차 그의 곡이 대중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1896년 칸타타 '올라프 왕(King Olaf)'이 북 스테퍼드 음악제에서 초연, 주목을 받았으며 1899년에 영국에서 발표한 '수수께끼 변주곡(Variations Enigma)'은 그에게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해 주었다. 또한 1900년 버밍검 음악제에서 초연한 오라토리오 '제론티우스의 꿈(Dream Of Gerontius)'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시트라우스에게 인정받게 되었다.

 

 

그 후 두 개의 교향곡을 비롯해 첼로 협주곡, 바이올린 소나타, 피아노 5중주곡 그리고 관현악곡 '사랑의 인사(Salut D'amour)', 관현합주를 위한 '한숨', '당당한 위풍' 및 오페라, 가곡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작품을 남겨 영국 음악계에 큰 공헌을 했다.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널리 알려진 엘가는 영국의 근대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작품의 경향은 고전 형식을 존중하면서 영국의 민속적인 요소를 첨가시켜 그의 독자적인 양식을 만들었다. 따라서 그는 현대 영국 음악의 선구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00년에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05년에는 옥스퍼드 대학, 예일 대학 등에서 학위를 받았다. 음악에 대한 공적으로 1904년 경(Sir)의 직위를 받았다.

 

 

"나는 작곡가의 천직을 옛날 이탈리아의 음유시인이나 켈트족의 서정시인이 했던 것처럼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 당시에는 군대에 앞장서서 분위기를 돋우는 것이나, 노래로 사람을 고취하는 것이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음악으로 행사를 축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난 그런 사람에게 음악을 선사할 뿐입니다."    

                                                                                                                        - Edward Elg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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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7세 [Edward VII, 1841.11.9~1910.5.6]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이다. 청년시절부터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여행하여 견문을 넓혔으며, 스포츠 ·문화 ·사회문제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60세에 즉위하였는데, 당시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을 앞두고 긴장사태가 고조되어가고 있었다. 영국 헌법상 국왕은 국정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며 그도 그 관례에 따랐으나, 외교면에서는 여러 나라 제왕들과 인척관계에 있었고, 황태자 시절부터 어머니인 여왕을 대신하여 여러 차례 공식 석상에 나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국제 외교계에도 능통하여, 그는 각국을 순방하면서 영국의 입장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특히, 영국-프랑스 협상(1904), 영국-러시아 협상(1907)의 체결로 말미암은 3국협상의 성립에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Pomp and Circumstance March No. 1